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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organism 메치니코프 백신에 관한 최근의 연구
2013-09-30 14:34:05

메치니코프

Science Times 

<백신에 관한 최근의 연구>


 

우리 몸에서 기억력 하면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혈액이다. 혈액 속 B림프구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이 능력은 질병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데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어린 시절 그렇게도 무섭고 싫었던 ‘예방 접종’은 바로 이러한 몸 속 기억력을 활용한 것이다. 이 단원의 많은 부분을 「과학향기」에서 인용한다.

▲ 박테리아의 분열, 일반적으로 세균으로 불리는 박테리아는 핵막을 비롯한 몇 가지 소기관이 결여된 원핵생물인데 곰팡이보다 작아 세균이라고 불린다. ⓒ

외부로부터 바이러스, 곰팡이, 박테리아(일반적으로 세균이라 부르며 원핵생물) 같은 병원체가 체내에 침투하면 우리 몸은 이 침입자 병원체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방어 부대를 창설한다. 그런데 신체가 만들어내는 방어 부대는 병원체 자체가 아니라 병원체 표면에 부착된 분자인 항원에 반응한다. 어떤 병원체가 A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 A라는 이름표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분해하는 방법으로 병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아쉬운 일은 A병원체를 물리친 방어 부대가 B병원체, C병원체에게 모두 통하는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A병원균에는 A항체, B병원균에는 B 항체 이런 식으로 그때마다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 반응한다. 따라서 정체불명의 강력한 병원균이 들어오면 제때 항체를 만들지 못해 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다행히 신체의 방어 부대에는 이를 만회할 탁월한 능력이 있으니 바로 기억력이다. 특정 항원에 대항해 만들어진 항체는 그 항원을 기억하고 있다 다음 번에 같은 병원체가 들어오면 처음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대응한다. 예방 백신은 이 ‘기억력’에 기대어 만들어진다. 병을 앓기 전에 미리 그 병의 병원균을 몸 속에 삽입해 방어 부대를 키워두면, 다음에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강력하게 대처하게 된다. 아프지도 않은데 맞아야 하는 주사, 예방 접종은 이런 항체의 기억력 덕분에 탄생했다. 예방 백신은 이 기억력 좋은 병사들을 모아 실전과 유사하게 교육 시키는 시뮬레이션 전투 프로그램인 셈이다. 
열이 있거나 아플 때는 예방 접종을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예방 백신이란 신체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이미 죽거나 기능이 약해져 질병을 일으키기 힘든 병원균을 인공적으로 삽입하는 것이다. 따라서 몸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면 백신에 포함된 병원균 때문에 도리어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항상 죽은 균을 사용해 백신을 만들면 질병에 걸릴 위험은 사라지겠지만 특정 병원체들은 죽은 균으로는 항체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결핵, 장티푸스, 황열, 홍역, 풍진, 천연두 등이 살아 있는 균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백신이다. 
예방 백신으로 단련된 신체 방어 부대에게도 처치 못할 난적이 있다. 만일 어떤 병원체가 수십 개의 이름표를 가지고 침입할 때마다 A, B, C, D …를 번갈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정작 잡아야 할 적은 하나인데 몸은 방어 부대들을 만들어내느라 힘을 다 써버리고 말 것이다. 경찰이 검은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를 수배했는데, 범인이 긴 금발머리 여자로 감쪽같이 변장하고 다닌다면 시민들의 제보를 기대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변종이 많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미 20년 전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지만 백신이 개발 단계에 이르면 바이러스가 또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몇 년의 연구가 허사가 되곤 한다. 
백신마다 유효기간이 다른 것도 곤란한 일이다. 감기로 널리 알려진 인플루엔자의 경우 백신의 유효기간이 3개월에서 길어야 6개월이다. 기껏 부대를 만들고 병사들을 훈련시켜 놓아도 6개월이 지나면 허사가 되는 것이다. 반면 홍역처럼 한 번의 백신 투여로 20~25년간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아직까지 모든 백신의 면역기간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연두나 소아마비는 한번 맞으면 평생 예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장담할 순 없는 일이다. 언제 병원균이 자기 몸을 바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면역 시스템은 때로 과잉 진압 작전이나 쿠데타를 일으켜 물의를 빚기도 한다. 전장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꽃가루, 음식물 등 별 것 아닌 뜨내기에 불과한데도 과민 반응을 하여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아군(정상 세포)을 적군(외부침입자)으로 착각해 공격하면 류머티즘과 같은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근래 가장 주목 받는 병의 하나가 알츠하이머병이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걸렸던 병으로 그는 사망하기 전에 자신이 미국대통령이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알츠하이머병도 언젠가는 백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예병일 박사의 글을 인용한다. 
‘노인성 치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전구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유전자를 실험용 쥐에 주입하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유전자 조작 쥐에 아밀로이드 펩타이드를 주입하여 면역반응을 유발시킨다.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며 계속 관찰한 결과 실험용 쥐는 아밀로이드 펩타이드에 특이성을 지닌 항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쥐의 뇌에서는 노인성치매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플라크가 전혀 형성되지 않는다. 또한 이미 플라크가 생긴 쥐에 같은 방법으로 백신을 주입한 결과 플라크 형성이 중단되었음은 물론 일부 감소되는 현상까지 보였다.’ 
이 설명이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직 정확한 질병 발생 기전도 모르는 상태에서 치료의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다. 새로운 치료법은 백신과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은 틀림없지만 백신이 기존에 사용되던 방식 즉 병원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구는 에이즈백신 연구에도 서광을 비추고 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변이를 일으키는 부위가 많으므로 백신제조 시 어느 부분을 표적으로 정할 것인지가 매우 어려웠는데 과학자들이 인체 면역결핍바이러스 구조 중에서 안정된 구조를 가진 부분을 발견했다. 최근에는 암과 같은 특정 질환 해결을 위해 백신을 이용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콜리가 암 백신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제창했는데 그는 1890년대에 급성세균성 감염이 발생한 암 환자에게서는 종양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콜리는 살아 있는 세균을 암 환자에게 주입한 결과 환자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작용기전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으므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의 딸 헬렌 콜리가 그의 연구기록을 검토하면서 본격적으로 백신으로 암을 퇴치하는데 도전했다. 
암 치료를 위해 학자들은 인체 내에서 T세포의 면역 능력을 향상시켜 암에 대한 저항력을 극대화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물질을 외부에서 투입하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비특이적 면역을 향상시키는 것 외에 특정 질환에 대한 특이 면역을 향상시키는 방법도 사용한다. 

암에 대한 면역 치료가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암 백신이라는 개념도 정립되어 암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백신과 같은 원리로 제조한 특정 물질을 주입시켜 암 발생을 억제하는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고 이인식은 설명했다.

▲ 일반적인 DNA, DNA를 이용한 백신을 유전자(gene)백신 또는 핵산(nucleic acid)백신이라고 하는데 기존 백신보다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DNA만을 백신으로 사용하려는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유전자(gene)백신 또는 핵산(nucleic acid)백신이라고 하는 DNA 백신을 동물에게 실험한 결과 근육에 주사한 DNA가 숙주세포 속으로 들어가 단백질을 합성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생산된 단백질은 지속적으로 숙주에서 면역반응을 자극시킬 수 있으며 백신과 같은 효과를 보이는데 이것의 장점은 기존 백신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존의 백신들이 주로 항체에 의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DNA 백신은 바이러스가 세포 내에 감염되는 원리를 흉내 냄으로써 세포가 매개하는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점이 있음에도 아직 DNA 백신이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DNA가 동물세포 내에서 완벽히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학자들은 앞으로 인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말라리아, 결핵 등 각종 질병 해결을 위한 DNA 백신이 연구되고 있는 중이다. 
<가끔 옳은 소리를 하는 메치니코프> 

마법의 탄환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보다는 성공한 사람들만 기억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이 1명이라면 실패한 사람이 99명일 정도로 실패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을 더욱 평가하고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 1845-1916) ⓒ

역사를 보면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 즉 행운이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 학계에서는 가장 운이 좋은 사람으로 파스퇴르를 종종 거론하는데 1908년 에를리히와 함께 노벨상을 받은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 1845?1916)를 보다 행운이 따라 다니는 사람으로 거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그는 항상 들떠 있었고 침착하고 과학적인 탐구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여러 번 적중하여 노벨상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폴 드 크루이프의 글을 많이 참조했다. 
메치니코프는 1845년에 러시아의 남부지방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그는 자신이 타고난 재능이 있다며 뛰어난 연구원이 되기 위해 하리코프 대학에 갔다. 그는 몇 달 동안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순전히 독학으로 「단백질의 결정」이라는 논문 작성에 몰두했다. 후대의 과학사가들은 그 당시 메치니코프는 과학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라고 말할 정도로 무모한 일이었다. 
또한 그는 당대에 유럽을 강타한 공산 이론에 심취하여 무신론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친구들은 그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고 누누이 친구들에게 강조하여 빈축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학기가 끝나기 며칠 전부터 그동안 무시했던 시험공부를 하더니 1등으로 시험에 합격했고 금메달을 받았다. 메치니코프가 기고만장하지 않을 리 없었다. 
여하튼 그는 자신이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고 조급한 면에서는 누구도 그를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현미경으로 벌레들을 관찰하는 법을 배운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미친 듯이 논문을 쓴 후 과학 잡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그런데 다음날 자신의 논문에 많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서둘러서 편집자에게 자신이 실수를 발견했으니 논문을 게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곧바로 반송되지 않았고 편집자들이 그의 논문을 거절한다는 답장을 보내자 그는 자살할 준비를 했다. 물론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폴 드 크루이프는 메치니코프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교수들과 말싸움하느라고 자살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 메치니코프는 의학 역사상 가장 운이 좋은 사람, 행운이 따라다니는 사람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그가 명명한 포식세포는 인간이 어떻게 면역을 갖는가를 알아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여하튼 메치니코프는 자신이 교수와 다투는 것은 러시아에서 제대로 된 과학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독일의 뷔르츠부르크 대학으로 서둘러 떠났지만 독일에 유학 온 러시아 학생들은 그가 유대인이라며 반기지 않았다. 
자신의 주위가 모두 적이라며 인생에 싫증이 난 그는 또 다시 자살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더니 자살하려던 생각을 중단했다. 진화론을 그가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윈이 진화론에서 가장 강한 자가 생존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골똘하다가 인류가 어떻게 세균의 공격에 저항했는가에 대한 환상적인 이론을 도출했다. 그는 호롱불 주위로 구름같이 몰려든 곤충들을 보면서 대담한 가설을 생각했다. 곤충들이 겨우 몇 시간을 살 뿐인데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이론을 어떻게 곤충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하고 의문을 품었다. 곧바로 그는 간단한 진화론을 만들었다. 
‘생존자들은 가장 강한 자들이 아니라 가장 영리한 자들이다.’ 
<미생물 사냥꾼> 
1883년 메치니코프는 갑자기 자연주의자에서 미생물 사냥꾼으로 돌변했다. 그는 오데사대학 당국자들과 싸움을 한 후 가족들과 함께 시칠리아 섬으로 가서 아마추어 실험실을 차렸다. 그는 파스퇴르와 코흐가 미생물 사냥으로 성공한 것을 알고 그들처럼 위대한 과학자로 성공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메치니코프는 미생물을 어떻게 사냥하는지를 몰랐다. 사실 세균을 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면과 불가사리가 먹이를 먹는 것을 보고 곧바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그들의 체내에 있는 이상한 세포를 발견했다. 그 세포들은 동물 몸의 한 부분이었지만 자유롭게 체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그리고 세포의 한 부분이 돌출되었다가 돌출 부위를 따라서 나머지 부위를 끌어당기는 것도 발견했다. 그것들은 흐르는 대로 움직이는 방랑하는 세포들(wandering cells)이었고 아메바와 같은 작은 동물과 똑같아 보였다.

▲ 불가사리(사진 joays), 메치니코프는 불가사리의 소화 작용을 통해 인간의 질병 전개과정을 유추해내었다. ⓒ

아마추어 생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그는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는 현미경으로 동물의 체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불가사리 유충 안에서 떠다니거나 기어 다니던 자유로운 세포들이 그가 넣은 카민 입자를 향해서 오더니 먹어 버렸다. 메치니코프는 자신이 불가사리의 소화 작용을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순간적으로 번개처럼 그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불가사리의 몸 안에 있는 방랑하는 세포들이 먹이를 먹는다면 틀림없이 독성을 갖고 있는 미생물도 먹을 것이다. 방랑세포들이 불가사리를 미생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있는 백혈구도 틀림없이 우리 몸을 침입한 세균들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것이다.' 
단 한 번의 실험이나 논문을 읽지도 않고 메치니코프는 불가사리의 소화 작용에서 인간의 질병을 전개해내었는데 그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세균을 전혀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손가락을 나무가시에 찔렸을 때 가시를 삐지 않고 그냥 놔두면 가시 주위에는 곧 농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 농은 대부분 백혈구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메치니코프는 장미 가시를 불가사리 유충의 몸에다 꽂았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추측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불가사리 안에 있는 장미 가시 주위에는 느리게 기어 다니는 방랑하는 세포가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메치니코프의 상상력은 비약하여 질병에 대한 면역 이론을 확정하고 마침 시칠리아에 와 있던 대학교수들에게 동물들이 미생물의 공격에 견딜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교수들은 그의 설명과 증거를 보고 감탄했다. 그의 설명을 들은 교수들 중에는 코흐의 이론에 콧방귀를 뀌었던 피르호 교수도 있었다. 
<날개를 다는 포식세포>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면역 반응은 발생 기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예병일의 글을 인용한다. 
첫째는 자연 면역(natural immunity)이라 하여 면역 초기 단계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일어나는 반응을 가리킨다. 피부 표면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방어 체계가 대표적인 자연 면역이다. 
둘째는 적응 면역(adaptive immunity)이라 하여 병원성 미생물에 노출되었을 때 받은 자극으로 인해 유발되는 면역 반응이다. 특정 미생물에 의한 자극이 지속되면 방어 능력이 크게 증가되며 각기 다른 종류의 자극에 대해 특이하게 반응하므로 특이 면역(specific immunity)이라고도 한다. 이 반응은 주로 림프구와 항체가 일으킨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이 바로 메치니코프가 발견한 식세포이다. 여하튼 메치니코프는 서둘러 자신의 위대한 발견을 알리기 위해 빈으로 돌아왔다. 마침 그의 친구인 클라우스 교수는 그의 설명을 듣고 자신이 발간하는 잡지에 이론을 발표해달라고 했다. 메치니코프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미생물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세포들에게 과학적인 이름을 제안해달라고 했다. 클라우스는 사전에서 포식세포(phagocyte, 게걸스럽게 먹는 세포)라는 단어를 찾아 주었다. 
메치니코프가 명명한 포식세포는 인간이 어떻게 면역을 갖는가를 알아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아마추어 과학자인 메치니코프로 하여금 세계적인 과학자의 반열에 서게 만들었다. 메치니코프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메치니코프의 진짜 연구는 그가 포식세포 이론을 세운 후로부터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증거를 물벼룩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가 물벼룩을 선택한 것은 불가사리 유충과 마찬가지로 물벼룩의 몸이 투명해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물벼룩이 어떤 병에 걸려야만 관찰 대상이 될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에게 또 다시 행운이 따랐다. 그가 물벼룩을 관찰하다가 갑자기 그 중 한 마리가 위험한 효모의 바늘처럼 뾰족한 포자를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 바늘은 좁은 식도를 통과한 다음 물벼룩의 위벽을 뚫고 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때 물벼룩의 포식세포는 위험한 바늘을 향해 밀려 와서 그것을 둘러싸고 녹이면서 먹었다. 반면에 포식세포가 치명적인 효모 바늘과 맞서 싸우는 데 실패하면 침입자들은 재빨리 수많은 효모로 발아해서 물벼룩을 먹어버렸다. 물벼룩이 죽는 것이다. 
메치니코프는 살아 있는 생물체가 자기를 죽일 수도 있는 암살자에 대항하는 신비한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관찰은 정확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관찰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물벼룩의 면역은 포식세포 때문이며 자연면역의 한 예다. 효모의 포자가 몸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순간, 포식세포가 그것을 잡아먹지 않는다면 효모는 자라기 시작해서 포식세포를 완전히 녹여서 죽여 버리는 독소를 분비한다.’ 
이제 남은 것은 개구리와 토끼 같은 큰 동물에서 일어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1886년 오데사에서 연구소가 세워지자 잠시 메치니코프가 소장이 되었다. 그는 토끼와 개, 원숭이의 포식세포가 결핵과 재귀열, 단독(erysiplelas)의 원인균을 잡아먹는지에 몰두했다. 곧바로 그의 실험실에서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유럽의 학자들은 메치니코프가 발견한 것들에 열광했다. 
그런데 문제는 개, 토끼, 원숭이는 물벼룩처럼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연구소에서 메치니코프를 시기하는 연구원들도 있었다. 메치니코프가 의사 면허증도 없으므로 그가 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비아냥 거렸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오데사 연구소에 사표를 내고 파스퇴르연구소로 가서 자신의 이론을 계속하여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스퇴르는 메치니코프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나도 몇몇 미생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본 적이 있고 자네가 올바른 길로 들어섰다고 믿네.” 
메치니코프는 가족과 함께 파스퇴르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으며 20년 동안 지속된 포식세포의 연구에 몰입했다. 
면역이라는 것이 포식세포와 침입자 미생물 사이에 일어나는 일종의 전쟁 때문이라는 그의 이론으로 유럽의 학계는 양분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학자들은 대부분 그의 이론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동물들에게 미생물에 대한 면역을 만들어주는 것은 동물들의 포식세포가 아니라 ‘혈액’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포식세포들은 방어자가 아니라 죽은 미생물만 먹는 청소부라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메치니코프는 완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파스퇴르의 백신으로 면역이 생긴 양의 혈액에서 탄저균이 왕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여 주는 독창적인 실험을 발표하여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메치니코프가 파스퇴르연구소에 있는 동안 독일과 프랑스 양측의 연구원들이 상대방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혈액과 포식세포가 함께 작용해서 세균을 퇴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한 어떤 질환에 대한 저항성의 근원이 혈액도 포식세포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복잡한 면역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폐렴균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땀이 약간 나다가 회복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이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으며 현재도 이 문제는 계속 의학계의 화두로 남아있다. 
여하튼 당대의 최고 연구진들로 모여 있는 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메치니코프의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혈액이 콜레라에 대한 인간 몸의 면역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병독성이 있는 콜레라균을 먹기도 했다. 메치니코프 자신도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양의 콜레라균을 먹었다. 
여하튼 열정으로 뭉친 연구원들은 메치니코프의 놀라운 불합리성, 편협성, 그리고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인류의 고통을 줄이고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데 연구원의 개인적인 하자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소 과장하여 말한다면 미생물 질환을 실제로 예방하는 방법은 메치니코프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류를 위해서는 메치니코프와 같은 사람이 많이 태어나야 한다는 유머가 나올 정도였다. 
<노화에 대한 연구> 
1900년대가 되자 메치니코프는 우리가 왜 면역을 갖는지에 대해 연구한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질병이란 단지 지나가는 한 사건이다’라고 적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치유되는 사람도 있지만. 메치니코프는 인간이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강해졌을 때 왜 늙어서 죽어야만 하는지 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사실 메치니코프는 죽음이라는 생각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를 비롯하여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늙어서 더 이상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지 않았던 두 할머니에 대한 보고서를 우연히 읽었다. 할머니들은 고된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편안하게 죽기를 원했다. 메치니코프는 자신이 연구해야 할 적절한 주제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자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처럼 죽고 싶은 본능이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진짜로 죽고 싶어질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메치니코프는 노화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의 과학자 에지렌은 동맥경화가 노화의 원인이며 알코올, 매독, 그리고 다른 병들이 동맥경화의 원인이라는 논문을 읽었다. 
당장 메치니코프는 인간들을 괴롭히는 병들이 어떻게 동맥을 딱딱하게 만드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연구 방법이 특이했다. 그는 매독을 연구 주제로 택한 것이다. 그는 매독이 어떻게 동맥을 딱딱하게 만드는지를 알고 싶었다. 매독환자들에게서 얻은 균을 원숭이들에게 접종하자 침팬지도 매독에 걸렸다. 그 후 4년 동안 매독균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데 몰두했다. 
이번에도 메치니코프에게는 운이 따랐다. 매독을 일으키는 균을 원숭이의 귀에 문지른 다음 24시간 후에 그 귀를 잘랐는데 원숭이의 신체의 다른 어떤 부분에서도 매독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메치니코프는 매독균이 몸에 들어가자마자 전신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매독균이 침입한 곳에서 몇 시간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즉 사람의 어디로 균이 들어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균이 퍼지기 전에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탁월한 감각이 추후 학자들로 하여금 질병 치료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메치니코프가 그의 미생물 사냥에 있어서 가장 실용적인 물질을 개발하는데도 성공하여 기염을 토했다. 유명한 염화제1수은 연고였다. 그는 파스퇴르와 같은 공개적인 실험을 했다. 젊은 의대생 메종뇌브를 부추겨서 매독에 감염된 사람에게서 얻은 매독균을 접종 받겠다고 자원하게 만들었다. 그런 후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의료계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 앞에서 용감한 메종뇌브가 일어나 엄청나게 많은 량의 위험한 균이 자신의 상처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메종뇌브가 매독균을 접종받은 지 한 시간 후에 메치니코프가 개발한 염화제1수은 연고를 발랐다. 그리고 메종뇌브와 함께 접종했던 원숭이에게는 연고를 발라주지 않았다. 메치니코프가 메종뇌브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매독에 걸리지 않았던 반면, 원숭이들은 30일 후에 병에 걸렸다. 
메치니코프의 매독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자 일부 도덕 주의자들이 그렇게 쉽고 완전한 치료법이 알려진다면 도덕성이 해이해 진다고 항의했다. 메치니코프는 예의 탁월한 웅변으로 대답했다. 
“매독의 확산을 막는 것이 부도덕한 주장이 있지만 모든 도덕적인 방법을 동원해도 매독의 창궐을 막지 못했으며 결백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도 했다.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부도덕한 일이다.” 
그에게 수많은 상이 수여되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수여되는 상금은 모두 연구비로 투여했다. 더욱이 1908년에 에를리히와 함께 노벨상을 받자 일부 학자들이 항의하기도 했지만 그의 업적만으로 평가하면 노벨상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여하튼 메치니코프는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연고를 발견하여 기세가 오르자 또 다른 연구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학자들은 그의 아이디어를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가 중독이었다. 인간의 대장에 있는 야만적인 부패균이 만드는 독소에 의해 중독이 되면 동맥을 딱딱하게 만들고 그것이 인간을 빠르게 노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장을 절제했던 두 사람이 대장 없이 오래 살았다는 기록을 찾아내고 대장이 없다면 훨씬 오래 산다고 믿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신중했다. 메치니코프답지 않게 사람들에게 장 절제 수술을 받으면 장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이번에도 학자들은 조롱했다. 어떤 사람은 코끼리는 엄청나게 큰 대장을 가지고 있지만 100살까지 산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인간도 큰 장을 가진 동물이지만 지구상에서 장수하는 동물 중에 하나라는 것도 지적했다. 

그는 동물들이 진화하면서 왜 큰 장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논쟁에 휘말리면서도 자가 중독의 해법을 찾았다. 소문에 따르면 불가리아와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100세가 넘도록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곳에서의 장수 요인은 유산균을 먹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 1900년대에 등장한 초창기 요구르트 광고 포스터 ⓒ

그는 자신의 실험실 연구원에게 곧바로 유산균을 연구하라고 말했다. 유명한 불가리아균(Lactobacillus bulgaricus)을 통한 치료약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그는 불가리아균이 젖산을 만들어 장 속에 있는 야만적이고 독성이 있는 균들을 쫓아 버린다고 설명했고 그의 새로운 이론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 신문들은 그가 다윈의 『종의 기원』 필적하는 논문을 작성했다고 갈채를 보냈고 수많은 곳에서 불가리아균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세워졌다. 메치니코프는 그들이 상표에 그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여 업자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므로 현재 세계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요구르트는 전적으로 메치니코프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자신의 이론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살았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담배를 피지도 않았다.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체액과 분비액을 조사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말한 불가리아균을 계속 먹었고 71세의 나이에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메치니코프의 아내는 1929년에 발간된 메치니코프 자서전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살균하지 않은 음식은 절대로 먹지 말 것을 평소에 늘 주장해왔는데, 미생물이 살아있는 발효유는 매일 먹는 것을 보고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당시에는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물학자는 당시 모든 음식은 열처리를 할 것을 권장하던 시기였다). 남편은 선천적으로 신장이 좋지 않았는데, 매일 유산균 발효유를 손수 만들어 먹은 이후에는 병이 호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전 세계의 유산균 생산업자들에게 가장 입맛에 맞는 말임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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