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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organism 로널드 로스 가장 골치 아픈 질병
2013-09-30 14:36:37

로널드 로스

Science Times 

<가장 골치 아픈 질병> 

선진국의 경우 살충제에 의해 모기의 발생이 억제되면서 말라리아의 발병을 거의 근절시켰지만, 아직도 세계의 넓은 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치명적인 병이다. 말라리아는 중앙 및 남아메리카, 중동과 아시아 그리고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풍토병이나 마찬가지이다.

▲ 사람의 몸에서 열심히 피를 빠는 모기(사진:강태구) ⓒ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로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으로 모기의 부화와 말라리아 원충의 발육이 용이한 섭씨 16?34도, 습도 60퍼센트 이상인 경우 즉 열대성 기후에서 잘 발생한다. 거의 20억 명의 사람들이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번성하는 지역에 살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지역에 따라 5세 이하의 어린이의 4분의 1이 말라리아로 죽고 있다. 
1992년에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3억의 인구가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있으며 해마다 약 3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죽는다고 발표했다. 이 단원은 예병일의 글에서 많이 참조했다. 
말라리아의 감염은 모기가 사람의 혈액을 흡입할 때 모기의 침을 통해 인체로 유충이 들어와 성숙하면서 발생한다. 모기에 물린 후 일주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나는데 잠복기 동안 간세포 내에서 포자가 분열하면서 간세포에서 빠져나온 유충체(merozoite, 낭충)가 적혈구에 침입하여 성장한 후 적혈구를 파괴시키면서 혈액으로 나오게 된다. 이때 원충의 대사산물이 혈액에 유리되면서 증상이 나타난다. 말라리아는 초기에 열이 발생하며 빈혈, 피로, 황달, 오한, 땀 등 발작이 일어나며 더 진행하면 경련과 의식 장애, 비장 종대 등이 발생한다. 
학자들은 곤충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모기라고 말한다. 모기에게 물리면 말라리아 이외에도 상피병(象皮病)을 일으키는 사상충(絲狀蟲)을 감염시킬 수도 있다. 상피병이란 사상충이 임파선을 틀어막아 피부를 부풀어 오르게 해 종종 환자의 다리를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붓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기가 사상충에 감염된 사람은 걸어 다닐 때 자신의 고환을 손수레에 올려놓고 끌고 다녀야 할 정도이다. 사상충은 인간을 숙주(宿主)로 삼게 되면 급속도로 번식하는데 피 한 방울에 수천 마리나 되는 실 같은 기생충들이 꿈틀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말라리아는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먼저 발생하여 유럽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말라리아의 특징적인 고열과 오한의 간헐적 돌발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의 학자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기원전 116~27)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늪지대에 살고 있는 어떤 미세한 동물이 입과 코를 통해 몸속에 들어와 병을 일으킨다’라고 말했다. 
5세기경 로마에서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질병이 대 유행한 적이 있으며 이때부터 유럽에서 말라리아와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등장한다. 1880년까지도 말라리아는 원인은 습한 지역의 나쁜 공기라고 생각되었다. 말라리아라는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말라리아는 19세기 말 대단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기 위해 군을 파견할 때 가장 두려워한 것이 말라리아였다. 인도군 및 인도 주둔 영국군 병사 17만 8천 명 중 7만 6천 명이 말라리아로 입원하였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였으므로 영국인들이 인도로의 파견을 극히 기피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매년 1만 5천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했다는 자료가 있고 미국에도 말라리아가 매우 성행했다.

▲ 말라리아 원충의 생활사 ⓒ

그러나 당시만 해도 모기가 말라리아를 매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당시의 질병학에 의하면 모든 질병은 세균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외과의사인 알퐁스 라브랑(Charles Louis Alphonse Laveran, 1845~1822)이 말라리아 환자들의 피를 조사하다가 그들의 적혈구 안에서 미소 유기체를 발견했다. 그는 말라리아가 기생 원생동물에 의해서 유발되며 ‘플라스모디아’로 불리는 유기체가 말라리아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말라리아는 세균이 아닌 미생물(말라리아의 경우 원생동물)에 의한 전염병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플라스모디아는 생물학적으로 박테리아보다 더 복잡한 원생동물이라고 불리는 단세포 유기체 무리에 속한다. 라브랑의 발견은 사람의 병을 일으키는 원생동물을 발견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그는 이 발견으로 190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데 말라리아는 1902년 로스(Ronald Ross)에 이어 단일 전염성 질환으로 유일하게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케 만든 질병으로도 유명하다. 
라브랑은 말라리아 외에도 아프리카의 수면병인 라슈마이어증, 아메바성 이질, 샤가스병 등 열대성 질환을 일으키는 원생동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글이 인용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폴 드 크루이프의 글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했다. 
<모기 사냥꾼> 

인간의 질병이 세균이 아닌 미생물로부터도 발생한다는 것은 학자들에게 충격을 준 동시에 좋은 연구 제목을 주었다. 라브랑의 발견을 발전시킨 사람은 로널드 로스(Sir Ronald Ross, 1857~1932)이다.

▲ 로널드 로스 소령 ⓒ

메치니코프가 미생물 사냥에 있어 계속 행운을 갖고 다녔다고 설명했지만 로스도 좌충우돌하면서 행운을 잡은 대표적인 미생물 사냥꾼 중 한 명이다. 로스는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미생물 사냥꾼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로스는 인도 국경 수비대의 영국 장군의 아들로 히말라야 산맥의 기슭에서 태어났다. 
열 살이 되기 전에 로스는 영국에 보내졌지만 의학대학교에 들어갔음에도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 의사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로스는 작곡으로 성공하려 했지만 자신이 모차르트나 베토벤과 같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자 당당하게 문필가가 되려고 작품을 썼다. 그러나 그가 쓴 원고를 출판사는 거들 떠 보지도 않자 자비로 출판했다. 
아버지가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화를 내고 용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발끈한 로스는 런던과 뉴욕을 오가는 정기여객선의 소위 무면허 의사로 취직하더니 갑자기 의학공부를 열심히 한 후 인도의 군의관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인도에 군의관으로 부임했지만 이번에도 그의 좌충우돌하는 기질은 여실히 발휘되어 의사보다는 수학자가 되겠다고 열심히 수학책을 섭렵했다. 물론 군의관답게 환자들의 수술에도 참여했다. 
1888년 영국으로 돌아가 로사 블록섬과 결혼한 후 인도로 돌아왔다. 결혼한 후 그의 생활은 더욱 다양하여 소설을 쓰고 속기법을 발명하고 음성철자법을 고안하는 것은 물론 골프 클럽의 총무로 선출되는 등 바쁜 생활에 여념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많은 말라리아 환자들이 몰려오자 말라리아에 걸린 힌두인의 혈액에 현미경을 갖다 대는 취미를 깃들였다. 그도 1880년에 프랑스군의 외과 의사였던 알퐁스 라브랑이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미생물의 이상하고 다양한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말라리아가 모기와 연결이 있다면 라브랑이 발견한 플라스모디아가 모기 속에서 검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휴대용 현미경으로 플라스모디아가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에서 발견하겠다고 도전했다. 
그런데 그는 수백 명의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들의 피를 자세히 관찰했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라브랑이 틀렸다고 확신한 로스는 말라리아는 위장관 장애 때문에 생긴다는 논문을 네 편이나 발표했다. 그가 성급하게 제출한 논문은 모두 틀린 것이지만 여하튼 그것이 그의 미생물 사냥꾼으로서의 시작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성급한 논문 제출로 망신을 당하는 등 자신이 한 일들은 모두 실패에 돌아갔다고 생각한 로스는 1894년 의학과 과학을 포기하겠다고 작심한 후 런던으로 돌아갔다. 이때 그는 런던에서 ‘열대병학의 아버지’라 불리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의사인 패트릭 맨슨(Patrick Manson, 1844?1922)을 만났다. 맨슨은 1866년부터 1890년까지 대만, 중국, 홍콩 등지에서 생활하면서 1879년에 피부에 기생하는 반크로프트 사상충(Filaria banccrofti)을 환자의 혈액에서 발견하고 이 질병이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또한 맨슨은 모기가 말라리아 원충을 열대 밀림이나 습지 등과 같은 병원소로부터 음료수로 옮기며 이 음료수를 마시면 말라리아에 감염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훗날 음료수를 통해 말라리아가 전파된다는 맨슨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로스에 의해 증명되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그가 로스와 함께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이때의 실수 때문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여하튼 그는 모기가 신이 창조한 이상한 동물들 중에 하나이지만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설명하여 이상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학자들로부터 다소 경원당하고 있던 차에 로스를 만난 맨슨은 자신의 연구실로 로스를 데려가서 검은 점이 후춧가루처럼 뿌려져 있는 희미한 말라리아 병원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열대지방에서 막 돌아온 선원의 혈액에서 건진 병원균이 적혈구 내에서 공 모양으로 바뀌었다가 적혈구를 터뜨리는 것도 함께 관찰했다. 
로스는 적혈구 안에서 뛰노는 말라리아 병원균을 보고 놀랐다. 공 모양의 것들은 혈구 밖으로 나가면 갑자기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고 그런 다음에 둘, 셋, 넷 어떤 대는 여섯 개로 갈라졌다. 그것들은 세차게 움직이다가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낙지 같은 모양이 되었다. 

나이가 많은 맨슨은 자신은 더 이상 연구할 수 없으니 로스가 인도로 돌아가서 말라리아를 연구해달라고 부탁했고 로스는 맨슨의 말에 설득되어 자신이 라브랑의 주장을 반박한 것조차 잊어버렸다. 로스는 인도에서 입원하는 환자의 3분의 1이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말라리아를 연구하는데는 자신처럼 적격의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만약 모기가 진짜 원인이라면 말라리아를 없애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까지 말하면서 맨슨에게 자신이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 인도에서 로널드 로스 소령이 말라리아를 연구한 병원 ⓒ

로스는 1895년에 인도의 세쿤데라바드로 발령을 받자 곧바로 모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인도정부는 로스가 모기 사냥을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로스가 유일한 의사이므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그의 의무라는 것이다. 
더구나 로스가 연구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단 하나의 모기 종류만이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수많은 모기를 잡아 말라리아 환자들이 벌거벗고 자고 있는 침대 위에 풀어 놓았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모기들이 사람을 물지도 않았다. 
결국 로스는 모기에게 아첨하는 꾀를 썼다. 인간의 체취가 밖으로 나오게 만들려고 환자들을 뜨거운 태양 아래로 몰아냈다. 그래도 모기들이 사람들을 물지 않았다. 그래도 낙담할 로스는 아니었다. 결국 모기장을 흠뻑 젖게 만들면 모기들이 사람들의 혈액을 빤다는 것을 발견했고 많은 사람들이 모기에 물리는 것을 즐거운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로스는 환자의 혈액을 빤 모기들을 잡아서 말라리아 병원충이 모기의 위장에서 자라는지를 조사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자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로스는 음료수를 통해 말라리아 감염이 일어난다는 맨슨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모기로 오염된 물을 직접 마셨다. 그러나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로써 맨슨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여하튼 로스가 맨슨에게 자신의 실패담을 보내자 맨슨은 초승달 모양의 말라리아 병원충에서 자라 나와 그것들을 문어 모양으로 만드는 이상한 채찍들을 잘 관찰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맨슨의 조언대로 현미경을 보면서 자신이 본 장면을 소설가처럼 작성하여 맨슨에게 보냈다. 
로스가 비록 아마추어적인 연구원이었지만 말라리아 병원균을 발견하겠다는 집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로스가 고생하는 것에 비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새로 발견한 이상한 모기의 뱃속에서 기생충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말라리아와 관계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는 말처럼 그는 드디어 새로운 종류의 모기를 발견했다. 모기의 위벽 세포에는 둥근 모양의 물체가 있었고 그 내부에는 칠흑같이 검은 작은 알갱이들이 있었다. 검은 알갱이들은 사람 혈액 안에 있는 말라리아 병원균 내부에 있는 검은 색소와 유사했다. 드디어 로스는 자신이 찾고자 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새를 통해 말라리아 연구> 
로스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영국의학잡지』 보냈다. 이번에는 자신의 발견에 다소 신중성을 보여 검은색 점들이 말라리아 병원균이 아니라 모기의 식도에서 나온 혈액의 색소일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로스가 말라리아를 더 이상 연구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인도의 의무대 상관들은 그가 엉뚱하게 진료를 하지 않고 말라리아를 연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를 진료만 하는 자리로 발령 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발령받은 곳은 인도 북쪽으로 그곳에는 모기가 별로 없었고 말라리아 환자도 없었다. 
로스는 자신의 발견을 강조하면서 수없이 말라리아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던 상관들은 로스가 워낙 귀찮게 자신들을 괴롭히자 결국 로스를 캘커타로 발령했다. 그곳은 말라리아가 발생하기 좋은 도시였고 말라리아 병원균을 갖고 있는 힌두인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을 상대로 말라리아 연구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로스는 인간을 대상으로 말라리아 연구를 할 수 없게 되자 새의 말라리아 연구로 관심을 돌렸다. 새들도 말라리아에 걸린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새들을 말라리아에 걸리게 만드는 말라리아 병원균은 사람의 것과 다름이 없었다. 1898년 로스는 열 마리의 회색 모기를 세 마리의 종달새가 들어 있는 새장에 풀어 놓았다. 새들의 혈액에는 말라리아 병원균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며칠 후 로스는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새의 말라리아 병원균은 회색모기의 위장 속에서 자란다. 사람의 말라리아 병원균이 갈색얼룩무늬날개모기(말라리아 모기)의 위장에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스에게 필요한 것은 말라리아 병원균이 어떻게 옮기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 로스가 1897년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발견했다고 적은 노트 ⓒ

그런데 그에게 정말로 운이 따라 주었다. 암컷 모기의 위벽에 있는 사마귀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린 새의 피를 빨아먹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 그 사마귀들이 터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마귀에서 방추형의 실들이 무리지어 행진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스는 모기의 몸 속에 우글거리던 방추형의 군단이 침샘을 향해 행군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새나 사람이 죽은 모기를 먹거나 모기의 가루를 흡입했기 때문에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모기가 직접 사람을 물어서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라리아를 계속 연구해달라는 부탁을 한 맨슨에게 자신의 발견에 대해 전보를 쳤고 자신이 틀렸다고 말했던 라브랑에게도 편지를 썼다. 
맨슨이 에딘버러에서 의학학회에 모인 의사들에게 로스의 발견을 설명했다. 그는 어떻게 새의 혈액에서 시작해서 모기 암컷의 뱃속과 몸을 거쳐 새의 몸 속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모기의 침샘까지 추적해 갔는지를 설명했다. 학회는 무명의 로스 소령에게 ‘신기원을 이룬 위대한 발견’이라며 그를 축하하기로 결의했다. 
맨슨은 로스보다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새들을 대상으로 한 사실이 인간에게도 반드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맨슨은 코흐가 이탈리아에서 모기를 가지고 한 실험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알려주며 영국을 위해서 확실한 발견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맨슨의 지적이 옳다고 생각한 로스는 회색모기와 녹색, 갈색, 얼룩무늬날개 모기로 계속 실험했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새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또 한 명의 모기 사냥꾼> 

로스가 실패했던 일에 도전한 사람은 파비아의 그라시(Giovanni Battista Grassi, 1854?1925)였다. 그는 스물아홉에 이미 교수가 되었고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길 것이라고 로스가 알기 전부터 실험했지만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 그라시 사후 30주년 기념우표 ⓒ

그런데 1898년 로스가 새로부터 말라리아균을 발견하던 해 로스 소령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시 말라리아 연구에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그가 말라리아 연구를 하게 된 동기는 애국심 때문이다. 당시에 말라리아는 수풀이 우거진 저지대에 사는 이탈리아인 수백만 명을 공격하여 이탈리아의 가장 비옥한 농장들을 황폐화시키고 있었으므로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생물 사냥꾼의 황제인 코흐가 모기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왔다. 코흐는 당시 결핵 치료제로 발표했던 튜베르클린의 부작용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으며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였다. 다소 불안정한 상태의 코흐를 만난 그라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탈리아에는 모기가 아주 많은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는 말라리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기가 말라리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모기가 없는 곳에서 말라리아가 발생한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라시는 모기가 많은 지역인데도 말라리아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특별한 종류의 모기만이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라시는 자신을 살인범을 찾아내려는 경찰관에 비유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수천 명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조사하지는 않고 우선 수상한 불량배부터 먼저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라시의 생각은 탁월했다. 
그라시는 1898년 여름 내내 이탈리아의 불결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20여 종류를 연구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들 모기는 말라리아가 발생하지 않는 지역에서 항상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24가지의 회색모기도 제외시켰다. 그들 모기는 불경스럽게도 신성한 교회 내에서도 사람들을 물었는데도 아무도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여하튼 그라시는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들의 집을 조사하고 직접 인터뷰를 통해 말라리아가 발생하는 곳에는 어디든지 모기가 있으므로 그 모기는 매우 특별한 종류의 흡혈모기라고 확신했다. 
사람들은 흡혈모기를 잔자로네(학명으로는 아노펠레스 클라비거)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 모기는 꼬리를 항상 하늘로 치켜 올리고 앉았다(집모기는 꼬리를 아래로 기울이고 앉기 때문에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잔자로네가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확신 하에 자기 고향인 로벨라스카에서 소년들에게 모기를 잡아오게 했다. 그는 스스로 실험동물이 되어 침대에 누워 모기들이 물기를 기다렸지만 모기는 그를 물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머니를 물었지만 어머니는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게도 운이 따라 주었다. 솔라라는 환자가 그에게 실험대상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말하며 세 가지 종류의 모기 암컷에게 매일 저녁, 한 달 동안 물려도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라시는 잔자로네 모기를 포함하여 세 종류의 모기를 준비하고 솔라를 물도록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모기는 솔라의 장담대로 말라리아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잔자로네에게 물린 열흘 뒤 솔라는 오한으로 온몸을 떨었고 말라리아 증세를 보였고 그의 혈액은 말라리아 병원균으로 우글거렸다. 그후 그는 잔자로네가 다른 사람들도 말라리아를 걸리게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그라시는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특효약인 퀴닌으로 처방했으므로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그때 그라시는 로스가 새를 가지고 한 실험 결과를 들었다. 그라시는 로스의 논문을 보고 잔자로네 모기의 위장과 침샘에서 동그라미와 사마귀, 방추형의 실들을 관찰하고 로스가 정확하고 옳다는 것을 알았다. 
코흐가 말라리아 연구에서 실패한 것은 텍사스열이 소에서 소로 옮아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라리아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미에게서 말라리아를 물려받은 새끼 모기가 사람을 물어서 감염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라시는 로스의 연구에 허점을 발견했다. 그는 수백 번의 정밀한 실험으로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새들에게는 병을 옮기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라시는 자신의 실험을 끝내고 잔자로네의 유죄를 확인하자마자 사람들에게 말했다. 
“잔자로네를 멀리하면 몇 년 내에 이탈리아에서 말라리아는 사라질 겁니다.” 
그라시는 고집스럽고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잔자로네의 위험성을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잔자로네가 활동하는 저녁에 산책을 하는 것을 보더니 말라리아모기가 기다리는 시간에 산책을 한다니 말라리아에 걸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화를 냈다. 
그는 저녁에 산책하려면 면장갑을 끼고 베일을 두르고 나가라고 조언했다. 사랑에 관한 일이라면 세계에서 이탈리아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탈리아인들에게 두꺼운 면장갑과 베일을 두르고 다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그라시 교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당연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잔자로네를 무시하는 것을 묵과할 사람은 아니었다. 한 가정이라도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수십 년을 거쳐서라도 설교할 가치가 있다며 공개 실험을 추진했다. 그는 말라리아가 심한 카파치오 지역의 철도청 직원들과 가족 112명을 해질녁에 잔자로네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집안에 설치한 방충망 속에 있도록 했다. 
그의 실험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인근에 살고 있는 415명의 주민 대부분이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방충망이 쳐진 감옥 아닌 감옥에서 밤을 보낸 112명 중에서는 다섯 명만이 말라리아에 걸렸다. 그것도 매우 가벼운 말라리아였는데 그라시는 그 전에 걸렸던 병이 재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로스 소령과 그라시의 결말은 너무나 달랐다. 로스는 회색 모기가 새들에게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발견한 공로로 1902년 노벨상을 받았다. 플라스모디아가 말라리아 병원균이라는 것을 발견한 라브랑도 1907년 노벨상을 받아 그런대로 위안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인간에게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발견한 그라시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라시가 로스는 회색모기가 새들에게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아마추어적인 연구로 발견한 것이지 실제로 말라리아모기가 말라리아를 사람에게 옮긴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했다면서 노벨상 수여 사실에 이견을 제시했다. 로스는 그라시의 비난에 그라시야말로 자신의 연구결과를 도용한 도둑이며 허풍선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물론 로스에게 수여된 노벨상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물론 로스와 그라시는 개인적으로 서로 으르렁거렸지만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기를 죽이고 환자들에게 항(抗)말라리아 약제인 키니네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데는 보조를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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