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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야기 최초로 세균과 원생동물 관찰
2013-08-01 18:05:47
이엠생명과학연구원

 

최초로 세균과 원생동물 관찰

 

역사 속 호모컨버전스 - 안토니 반 레벤후크

세균과 원생동물을 최초로 관찰한 미생물학자 안토니 반 레벤후크는 인구 통계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현미경 기술자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안토니 반 레벤후크는 어릴 적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점차 다른 분야로 확대하는 능력을 가졌다. 또한 어떤 대상을 관찰해야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대해서 탁월한 직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당대 최고의 현미경 기술자

 

현미경은 유리 가공 기술과 함께 발전해 16세기 후반에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현재 대략 1590년경에 네덜란드 발명가인 요하네스와 얀센이 고안해 낸 복합 현미경을 최초의 현미경으로 보고 있다. 볼록렌즈와 오목렌즈 한쌍이 약 45센티미터 길이의 관 양쪽에 설치된 것으로 렌즈 하나보다 두개가 더 낫지 않을까 해서 등장한 것이 복합 현미경이라고 할 수 있다.

레벤후크는 당시 유행하던 복합 현미경을 거부했다. 그가 직접 만든 단순한 현미경은 배율이 40배에서 266배나 될 만큼 성능이 좋았기 때문에 복합 현미경이 필요 없었던 셈이다. 

레벤후크가 보유한 현미경의 수는 500개가 넘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 모든 현미경을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광학이론을 배운 뒤, 직접 렌즈를 제작하고 유리를 연마하는 기술과 광택을 내는 기술을 익혀 현미경을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정한 기준에 맞춰서 그의 요구대로 렌즈를 만들어줄 사람이 그 당시에는 없었다.

레벤후크는 빛에 관한 지식도 상당했다. 이는 그가 극미동물을 관찰하는 데 있어 곡률이 작은 렌즈가 큰 렌즈보다 더 뚜렷한 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극미동물은 현미경의 빛에 관한 장치를 조작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연구 성과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미경 제작 과정과 기술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현미경을 만들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드러난 것이 없다. 그래도 자기가 만든 현미경 가운데 가장 좋은 스물여섯 개를 골라서 영국 왕립학회에 기증하기는 했다. 하지만 왕립학회가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그의 현미경은 아홉 개밖에 되지 않는다.

세균과 원생동물을 최초로 관찰한 미생물학자

훨씬 앞선 렌즈 가공 기술로 인해 레벤후크는 최초로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그는 또한 인간의 몸을 생생하게 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보기 이전에 인류는 아무도 남성의 정자를 보지 못했고, 인체의 다양한 피부 세포도 알지 못했다.

레벤후크가 과학계에 알려진 것은 독학으로 해부학을 연구한 걸로 이름이 알려진 네덜란드 의사 레이니어 데 그라프에 의해서이다. 그는 레벤후크의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현미경을 살펴봤다. 그리고는 영국 왕립학회에 레벤후크가 쓴 ‘피부에 난 곰팡이와 벌침 등에 관해 반 레벤후크가 제작한 현미경으로 관찰한 몇 개의 표본’이라는 긴 제목의 글과 함께 소개장을 동봉해 보냈다. 이후 레벤후크의 글은 ‘철학 보고서’에 실어졌다. 더불어 연구 성과를 과학계에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7세기만 해도 작은 곤충이 가장 작은 생명체로 알려져 있었다. 한마디로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생명체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웅덩이에 고인 물방울 속에서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생명체를 최초로 관찰해 인간들이 모르는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당시만 해도 하등동물들은 자연적으로 생겨나거나 부패물로부터 발생된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레벤후크는 크기가 큰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벼룩도 모든 성질을 완벽하게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으며, 날개 달린 일반적인 곤충의 발생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태어난다고 하는 개념인 자연발생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으로, 생물학의 수준을 최소한 백년 정도 앞당기는 쾌거를 이루며 세균학과 원생동물학의 기초 확립에 영향을 미쳤다.

레벤후크는 이후로도 45년 동안 연구를 계속했다. 왕립학회에 190회의 보고를 했고,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27회의 보고를 했다. 1674년에는 세계 최초로 적혈구 세포를 관찰하고 그 생김새를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최초로 세계 인구를 통계한 사업가

레벤후크가 세계 인구라는 통계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는 기숙학교를 졸업한 뒤에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포목상의 도제로 일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그런 종류의 도제 수업은 일종의 경영학 과정 같은 것이었다. 레벤후크는 3년 과정을 거쳐야 하는 도제 시간을 단 6개월 만에 끝내고 시험에 합격했을 정도로 경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이후 포목점을 직접 운영했고 사업적 성공도 거뒀다. 더불어 현미경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면서 과학자로서 명성도 쌓아갔다.

그런데 어느 날 정자를 발견하고 그 크기가 얼마나 초소형인지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정확하게 전달할 수가 없었다. 레벤후크는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세계 인구수와 정자수를 비교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먼저 지구의 인구수가 얼마인지를 계산했다. 하지만 그는 기하학과 같은 고급 수학에 기대지 않았다. 사업가로서 자신이 잘 아는 도구인 상인의 산수를 활용했다.

물론 그가 세계 인구 통계에 사용했던 가정과 자료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을 바탕으로 지구에 사는 사람의 수를 마침내 계산해냈다. 사실 레벤후크가 결론을 얻어낸 계산 과정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핵심은 레벤후크가 ‘정자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를 숫자를 빌려 표현하고자 한 덕에 인구 통계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문이 열렸다는 점이다.

김연희 객원기자 | iini03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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