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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야기 페니칠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
2013-08-14 17:09:11
이엠생명과학연구원

항생제 혁명
 

─페니칠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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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앨버트 알렉산더Albert Alexander는 2개월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다. 그는 지독한 전염병을 상대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해왔다. 이 질병은 입 한쪽 구석의 조그만 염증을 시작으로 이내 얼굴 전체와 눈과 머리로 염증이 퍼져가는 참혹한 질병이다. 알렉산더의 왼쪽 눈은 일주일 전에 없어져 버렸다. 이 경찰을 이렇게 비참한 상태로 내몬 연쇄 상구균(Streptococcus)과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은 왼쪽 어깨와 양쪽 폐까지 침입했다. 몇 군데 종기는 외과 수술로 제거했지만, 계속해서 다시 곪았다. 한때 이런 종류의 세균을 공격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여겼던 <설파제sulpha drugs>로 치료해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이런 거침없고 맹렬한 전염병이라는 요괴에 익숙해져 있는 의사들은 죽음만이 유일한 해방의 길임을 알고 있었다.
  이 절망적인 알렉산더가 옥스퍼드 래드클리프 병원에 근무하던 찰스 플레처Charles Fletcher와 만난 것은 1941년 2월 12일이었다. 플레처는 위츠L.J. Witts 교수 밑에 있던 젊은 연구원으로서 나중에 옥스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누필드Nuffield 교수가 되었다. 한 달 전 그는 위츠 교수가 병리학과의 동료 교수인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우연히 그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뛰어난 호주 병리학자로 나중에 왕립학회 회장이 된 플로리는 그의 프로젝트를 도울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이렇게 하여 플로리, 노먼 히틀리Norman Heatley, 독일계 유대인 화학자로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망명해 온 에른스트 카인Ernst Chain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스코틀랜드인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10여 년 전에 실패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페니칠륨 노타튬이라는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물질을 분리하여 정제하려고 했다. 이 물질을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공격하는 <마법의 탄환>으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페니칠륨 노타튬이 만드는 어떤 물질이 특정 세균에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관찰한 사람은 런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일하던 알렉산더 플레밍이었다. 그는 버려진 배양 용기의 젤리 성분 위에 자라난 포도상구균 균체가, 배양을 오염시킨 곰팡이로부터 퍼져나온 어떤 물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플레밍은 이 물질이 다 자란 세균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후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실제로 우리가 현재 <페니실린>이라 부르는 것은 성장기의 세균에 대해서만 작용한다. 즉 세균이 세포벽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하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죽이는 것이다. 몇 년 후에 로널드 헤어Ronald Hare의 추적으로 확인된 바로는 플레밍이 배지에 포도상구균을 접종하기 전에 이미 이 곰팡이가 플레밍의 배지에 오염되어 있었고, 포도상구균의 정상적인 성장이 이 페니실린에 의해 억제되었다.
  플레밍은 비록 최초로 페니칠륨 노타툼을 관찰하여 그것을 학술지에 발표하였지만, 페니실린을 정제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이 우연한 성과를 응용해 유용한 약품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1940년과 1941년 사이에 플레밍의 연구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발전이 하워드 플로리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1년 2월 이미 쥐에게 시험을 해본 플로리는 질병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이 물질을 시험해 볼 인간 모르모트를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찰스 플레처는 자원한 사람에게 페니실린을 주입했고 이것이 인간에게는 무독성임을 최초로 보여주었다. 그는 페니실린을 이용해 끔찍한 질병에 감염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 1941년 2월 12일 그는 당시 심한 질병으로 회복의 기미가 없던 앨버트 알렉산더에게 치료 가능성을 가진 200밀리그램의 약을 투여하였다. 그러고는 세 시간 간격으로 소량의 약을 계속해서 투여하였다.
  그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24시간도 채 안 되어 알렉산더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다. 체온이 정상으로 떨어졌고, 곪아가던 상처가 낫기 시작하였으며, 입맛도 다시 돌아왔고, 5일 후에는 오른쪽 눈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좋은 결과를 맺지는 못했다. 페니칠륨 노타툼이 플로리, 히틀리, 카인에게 만들어준 페니실린은 너무나 적은 양이어서 곧 바닥이 났다. 그들은 알렉산더의 오줌으로부터 희석되어 거의 남아있지도 않은 이 만병 통치약을 필사적으로 추출하여 다시 혈관에 주사했다. 그러자 환자는 조금 더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회수량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것은 치료의 중단을 예고했다. 그래도 환자는 주사 때마다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곧 포도상구균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고, 결국 앨버트 알렉산더는 3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런던 공격이 한창이던 1941년 2월에 옥스퍼드의 이 사건은 20세기 의학사에 있어 가장 극적인 개가로 남았다. 지금은 셰필드에서 세실 페인Cecil Paine이 이보다 몇 년 앞서 환자들에게 가공하지 않은 천연 페니실린을 투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시 그는 학술지에 자신의 실험을 발표하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이 과학에서 이런 종류의 새로운 발견을 알리는 것은 발견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렇기에 옥스퍼드의 실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미국에서는 약품이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고, 곧이어 항생제 혁명이 일어났다.
  페니실린의 극적인 효과는 매독이나 전쟁 사상자들이 겪게 되는 무시무시한 전염성 상처들에 대해서도 탁월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그 이후에도 충분이 <경이로운 약>이라 불릴 만했다. 병원균 중에서도 의사들이나 환자들 모두가 두려워한 것으로 뇌막염과 폐렴을 일으키는 세균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새로운 강력한 무기로 물리칠 수 있다.
  나중에 탄생한 다른 항생제와 함께 페니실린은 항생제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인간의 수명을 족히 10년은 연장시켜 주었다. 오늘날에는 매년 영국에서만도 무려 2,500만 건에 이르는 페니실린 처방을 내며, 이제는 모든 페니실린이 안전하고 강력한 약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과다한 처방이나 항생제 저항성 계통에 대한 문제가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약물 처방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질병의 고통과 대량 살상을 막을 수 있다. 옥스퍼드에서 앨버트 알렉산더가 일시적으로나마 회복을 보였던 기적이 일어난 지 50년이 지난 후에 피니칠륨 노타툼은 항생제 혁명을 일으킨 미생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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