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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야기 Clostridium acetobtylicum
2013-08-16 15:03:02
이엠생명과학연구원

이스라엘의 건국자
         ─클로스트리듐 아체토부틸리쿰(Clostridium acetobtylic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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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맨체스터 대학교의 어느 실험실에서 일하던 한 젊은 화학자는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 생명공학 산업을 낳은 발견을 해냈다.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정치사에 급진적인 변화도 초래했다. 젊은 화학자 체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이 효모가 설탕을 발효시켜 알코올을 만든다는 루이 파스퇴르의 발견을 근거로 아세톤을 만드는 박테리아를 발견한 것이다. 바이츠만이 찾은 이 박테리아는 클로스트리듐 아체토부틸리쿰(그림)으로 매우 유용한 물질인 아세톤을 생산한다. 이러한 발견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민족적 모국>으로 인정한 1917년 11월 6일의 밸푸어Balfour 선언과 30년 후 이스라엘의 국가 선포를 이끌어냈다.
 1874년 러시아 서부에 위치한 모톨Motol이라는 작은 촌락에서 태어난 체임 바이츠만은 젊은 유대인들에 대한 대학 입학 허가제한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는 스위스에서 공부하다가 1904년에 영국으로 갔다. 그는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유대인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일하게 해주었으며, 철저하게 능력에 따른 대우를 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영국을 선택하였다.
  바이츠만은 얼마간 런던 동쪽 끝에 거주하다가 유명한 화학과교수 윌리엄 퍼킨William Perkin에게 보낸 자기소개서가 받아들여져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순식간에 아주 유명해졌고 다른 동료들과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다. 유명한 화학자 로버트 로빈슨Robert Robinson 경은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가 그 유명한 반 크라운을 가지고 처음 맨체스터에 도착하였을 때 나는 퍼킨 교수의 개인 실험실에 있었다. 퍼킨 교수는 다음날 나에게 우리가 <대단한 인물>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곧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 그의 강의는 최고였고 그만의 특유한 재치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이것은 학생들의 구미에 딱 맞았다. 그는 각계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1915년 초 《맨체스터 가디언Manchester Guardian》의 편집장 스콧C. P. Scott은 군수참모장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oyd George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군수참모장은 폭발성이 높은 무연 화학 제조에 필요한 아세톤의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는 최초의 드레드노트 군함에 장착된 12인치(약 30센티미터) 포에서 날아갈 포탄을 조달하기 위해 많은 양의 무연 화약 공급이 필요한 시기였다. 나무를 증류해서 아세톤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이 공급량을 맞출 수가 없었다. 스콧은 고민하는 군수참모장에게 제안을 하나 하였다. 그는 <맨체스터 대학교에 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복무할 의지가 있는 아주 뛰어난 화학 교수가 한 사람 있습니다. 그는 비스툴라Vistula 근처의 어딘가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어느 편인지를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이츠만 이라고 합니다>.

바이츠만은 아세톤을 합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런던에서는 황급히 회의가 소집되었다.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곧 위일스의 로이드 조지의 열정에 자극받아 잔뜩 흥분하여 돌아온 바이츠만은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이 문제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세톤을 합성할 수 있는 자연의 <미생물 서식지>에서 미생물을 분리해내기로 한 것이다. 그는 파스퇴르의 효모처럼 자가번식하는 유기체가, 거대한 통에서 자라면서 필요한 화학 물질을 엄청나게 싸면서도 효율은 굉장히 높을 것이다!
  놀라울 만큼 단기간에 바이츠만이 구상한 작업은 멋지게 성공했다. 그는 클로스트리듐 아체토부틸리쿰으로 아세톤뿐 아니라 부틸 알코올이라는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데에도 힘을 기어울였다. 로이드 조지는 자신의 『전쟁 회고록 War Memoirs』에 바이츠만의 업적을 이렇게 적었다.

  몇 주도 안 되어 그가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옥수수나 다른 곡류 또는 이따금 흙에서 발견되는 <미생물 서식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곡류, 특히 옥수수의 전분을 아세톤과 부틸 알코올로 전환하는 유기체를 분리해냈다. 정말로 짧은 시간 내에 그는 약속대로 <밤낮으로> 일을 해서 배양균을 얻었고, 옥수수에서 아세톤을 추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 이 발견을 통해 우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화학 물질을 상당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어려움이 바이츠만 박사의 천재성 덕분에 해결되자 로이드 조지는 총리에게 적절한 서훈을 내리도록 청하였다. 바이츠만은 이것을 거절하는 대신, 그의 마음속에 언제나 남아 있던 문제─전세계에 퍼져 있던 유대인을 본국으로 송환할 필요성─를 제기하였다. 나중에 로이드 조지가 총리가 외었을 때 그는 바이츠만이 제안한 문제를 외무부 장관 얼 밸푸어Earl Balfour와 의논하였다. 이렇게 하여 역사적인 1917년의 밸푸어 선언이 나오게 되었고, 이어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으며 바이츠만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또한 레호봇Rehovot에 지금은 바이츠만 연구소로 알려진 건물이 세워졌다. 어네스트 베르그만Ernest Bergmann이 초대 소장이었던 이 연구소는 원래 시프Sieff 경이 자신의 아들을 기념해서 세운 다니엘 시프 연구소Daniel Sieff Research Institute였다. 우수 인력의 중심지인 이 연구소는 언제나 과학 분야에서 국제적인 연대를 촉진하는 일에 특히 중점을 두고 있다. 1951년 바이츠만이 이 연구소의 소장이 되면서, 연구소는 전세계 과학 연구의 주요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바이츠만 역시 명성을 얻었다. 이것은 연구소 건물과 정원의 청결을 꼼꼼히 챙겼던 데서 비롯하였다. 과학 저술가 앤서니 미카엘리스Anthony Michaelis는 바이츠만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1974년 영국-이스라엘 협회가 발간한 소책자에서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그는 방문자들이 던져버린 꽁초를 몸소 주웠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 몇 번 목격되자 아무도 꽁초를 버리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있는 낡은 건물 몇 채는 오늘날에도 당시의 아주 깨끗했던 나날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곳에서 재떨이들이 10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벽에 고정되어 있다. 이런 풍경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다.

  바이츠만의 아세톤-부틸 알코올 발효 업적을 단순히 두 가지 특정 화합물을 만들어낸 천재적인 방법으로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그의 연구와 철학은 현재 비타민에서 항생 물질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물질을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생산하는 발효 산업의 성장을 가져왔다. 지금은 생명공학이라고 알려진 이 모든 활동은 원래 미세한 박테리아인 클로스트리듐 아체토부틸리쿰의 합성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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